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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은애(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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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인애
작성일 10-03-30 11:19 | 조회 6,450 | 댓글 0

본문

초등학교 졸업을 일주일 앞둔 날입니다. 수업을 마친 은주는 교문을 벗어납니다.
"은주야, 같이 가."
뒤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빨리 집에 가야 해."
"애,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친구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집으로 뛰어갑니다.
막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엄마가 신발을 끌며 종종걸음으로 나옵니다.
"엄마, 어디 가세요?"
"은애, 은애가 없어졌어."
다급히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기에 은주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섭니다.
소파에 앉으신 할머니는 잔뜩 화난 얼굴입니다.
"네 어미 못 봤냐?"
"은애 찾으러 방금 뛰어가던데요."
"너도 한 번 나가 봐라. 노인정에 갔다 들어오면서 내가 문을 걸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새 사라져 버렸구나."
"엄마가 찾아오겠죠."
은주는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습니다.
은애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집안 분위기가 싫어집니다. 은애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언니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은애는 창백한 얼굴빛말고는 별다는 점이 없습니다. 여느 아이처럼 예쁘장한 일곱 살 꼬마일 뿐입니다. 그러나 은애는 말을 거의 못 합니다. 또래 친구들이 가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언제나 혼자입니다. 집에서는 언제나 딱 한 가지, 도미노 블록만 가지고 놉니다. 세웠다 무너뜨리고, 또 세우고. 때론 자기 마음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지릅니다. 아무리 말리고 달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은애는 오늘처럼 가끔씩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습니다. 온 식구가 놀이터로, 동네 슈퍼마켓으로 헐레벌떡 나가 보면 은애는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손 귀한 집에 아들이 없는 것도 속상한데 온전치도 못한 계집애라니?"
할머니가 혼자말로 불편한 속을 보이시면 엄마는 주방에서 일하다가도 그만 꼼짝을 못하고, 목까지 올라온 말들을 꾹 누르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킵니다.
"은주야, 너도 한번 나가 보라니가. 안 들리냐?"
"알았어요."
은주는 대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엄마가 은애를 찾으러 간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난 듯합니다.
'정말 어디로 간 거야. 날씨도 추운데…….'
전에는 한 시간도 안 돼 은애를 데려오던 엄마는 또 어디로 갔는지, 엄마도 은애도 보이지 않습니다. 터벅터벅 놀이터 쪽으로 가 봅니다. 어쩌면 그 곳에서 모래를 만지고 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겨울 오후, 한풀꺾인 햇발이 조용히 내려앉은 놀이터엔 텅빈 그네만 왔다갔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디로 간 거지?'
동네 슈퍼마켓을 지나 길을 건넜습니다. 멀리 파출소로 가는 비탈길에 아빠 차가 보입니다.
'으응, 아빠가 여기 왜?'
순간적으로 은애가 파출소 있구나 생각하며 뛰어갑니다. 파출소 문을 열자 엄마와 아빠가 보입니다.
"엄마, 은애는?"
엄마와 은애는 경찰관 아저씨에게 은애 사진을 보입니다.
"꼭 좀 찾아 주세요. 연락이 오면 전화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빠는 경찰관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일어섭니다. 엄마의 눈가는 빨갛습니다. 아빠는 엄마 어깨를 잡고 파출소 문을 밀었습니다. 은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엄마와 아빠 뒤를 조용히 따라 나옵니다.
"은주야, 넌 집에 가 있어. 엄마랑 아빠는 조금 더 찾아보고 들어갈게. 혹시 전화 올 지도 모르니까 알았지?"
잎을 다 떨군 겨울 나뭇가지의 긴 그림자가 아빠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가고, 아빠는 오른편 아파트 쪽으로, 엄마는 큰길 건너 쪽으로 찾아갑니다.
벌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갑니다. 바람은 쌀쌀해서 바깥에 내놓은 손이 시립니다.
'은애는 어디로 갔지?'
'예쁘장하니까 누가 자기 아이 삼으로겨 데려간 걸까?'
'아니면 나쁜 아저씨가 유괴한 것은……?'
매듭을 풀고 딸려 나오는 실처럼 지나친 상상력은 생각에 또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집에 혹시 협박 전화가 걸려 왔는지도 몰라.'
'여기 당신 딸 데리고 있으니 돈 가지고 나와!'
갑자기 무서운 범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괴성 같은 은애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올리는 착각에 빠져 듭니다.
'아냐! 은애에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은애가 말을 못하는 아이인 줄도 모르고 다그치다가 해칠지도 몰라.'
"안 돼!"
대문 앞에 도착한 은주는 갑자기 소리를 치고 맙니다. 초인종 누르는 것도 잊고 대문을 쾅쾅 때립니다.
마당에 서 계신 할머니는 먹구름 같은 얼굴로 문을 엽니다.
"어떻게 된 거냐. 은애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엄마랑 아빠는 다른 쪽으로 찾으러 갔어요. 저보고 집에 가서 전화 기다리고 있으라 했어요."
금세 어둠은 빛들을 야금야금 먹고 마당 구석까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은주는 거실 바닥에 앉아 전화기만 바라봅니다. 소파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는 다시 마당으로 나갑니다. 벌써 저녁 6시입니다.
그 때 다급히 전화벨이 울립니다.
'따르릉 따르릉, 따!'
"여 여보세요!"
"은주야, 아빠다! 전화 온 거 없었니?"
무거운 아빠 목소리입니다.
"아직요."
"어디서 연락 오면 아빠 핸드폰으로 꼭 전화해라."
"예."
은주는 조용히 전화기를 내립니다.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안절부절못하시는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마십니다. 컵을 든 할머니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녁 여덟 시가 넘어 눈이 움푹 들어간 모습으로 아빠와 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엄마가 활짝 웃는 일은 물론 없었지만 오늘처럼 저렇게 기운 잃은 모습을 은주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들 굳게 입을 다문 채 전화기만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무서운 정적이 온 가족을 다 삼켜 버린 듯합니다.
엄마는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립니다.
"대문 열어 놓으면 은애가 나간다는 걸 뻔히 아시면서 어머님은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금방 나갈 거라고 그랬는데 그사이 은애가 나갈 줄 알았냐?"
"평소에도 어머님은 은애가 없었으면 하고 바라셨잖아요."
"아, 그러면 내가 일부러 나가라고 문을 열어 놓았단 말이냐!"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습니다. 가만히 있던 아버지는 엄마를 나무랐습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하는 거요. 조용해요!"
"아이고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아빠는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엄마가 엉엉 소리 내어 울자 은주도 덩달아 눈물이 납니다.
휴지를 가지러 엄마 방에 들어간 은주가 뛰쳐나옵니다.
"엄마, 은애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나간 것 같아요."
장롱 옆에 세워져 있는 옷걸이에 엄마 옷과 함께 은애의 목이 긴 상의와 빨갛게 골진 바지가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말도 안 신고 간 거다."
할머니가 놀란 눈으로 뛰어나오며 말합니다.
엄마는 은애 옷을 붙잡고 또 웁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그쳐지지 않습니다. 한찬 동안 모두 아무 말이 없습니다.
'댕댕댕…' 시계가 아홉 번을 두드렸습니다.
은주는 소파에 얼굴을 기댔습니다.
"어엄-마아!"
은애의 목소리입니다. 깜깜한 골목에 은애의 울음소리가 울립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은주는 은애를 부릅니다. 하지만 은주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은애의 목소리를 쫓아 은주는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학교 운동장이 보였습니다. 운동장은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운동장 한 모퉁이에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팔을 흔들며 아는 체를 합니다. 사방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은주는 나지막이 은애를 불렀습니다.
"은애야."
은애는 보이지 않습니다. 울음소리도 뚝 그쳐졌습니다. 은주는 빠른 걸은 디디며 운동장을 두리번거립니다. 느티나무 아래 작은 의자 하나가 보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그 곳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습니다. 또박또박 책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 은주는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 품에서 은애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손을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눈을 감은 은애는 빙그레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은애야!"
은주가 은애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환하던 운동장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은애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겁에 질린 은주는 그 자리에 서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머니! 은애야!"
'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은주가 눈을 떴습니다. 놀라서 두리번거립니다.
아빠가 전화기를 잡았습니다.
"여보세요! 파출소요? 예예, 가겠습니다."
아빠는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소파에 앉아 잠이 들었던 은주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여보, 빨리 갑시다."
아빠는 급하게 차를 몹니다. 은주도 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빠의 표정은 너무 굳어져 있습니다.
"아빠, 너무 빨리 가면 위험해요."
"아, 은주도 탔구나. 아빠가 마음이 급해서……."
찻길에 미끄러지는 불빛이 엄마의 얼굴을 스쳐 갑니다. 촉촉이 젖은 엄마의 눈가에 잔주름이 보입니다. 은주는 살며시 엄마 손을 잡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급하게 세우고, 아빠와 엄마는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파란 담요로 몸을 싼 은애가 의자에 앉아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습니다. 한쪽 볼엔 긁힌 자국이 있었고, 빵을 잡고 있는 손이 발갛습니다. 엄마를 알아본 은애는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어어엄…마아."
은애가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는 안타까운 듯 은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쌉니다. 뒤에 서 있던 아빠와 은주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경찰관 아저씨가 말을 꺼냈습니다.
"학교 옆 골목길을 순찰 중이었는데 담 너머에서 재잘거리는 여자 아이 소리가 들렸어요."
"울지 않고요?"
"우는 것은 아니었어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순간적으로 은애라고 생각했어요."
깜깜한 운동장에서 혼자 놀던 은애는 경찰관 아저씨를 보자 울음을 터트린 모양입니다. 아빠는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어…엄…마아. 어엄마아!"
차에 탄 은애는 엄마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엄마는 차 안에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 은애 찾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엄마는 다시 눈물을 훔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은애는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은주도 은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대문 앞에 할머니가 서 계십니다. 차가 멈춰 섰습니다.
"아이고, 은애야! 이 할미가 미안하다."
할머니가 흐느끼는 것은 처음 봅니다. 은애를 안은 엄마도 눈물을 보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은애는 계속 잠만 자고 있습니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이 담요 사이로 삐죽 나왔스빈다. 할머니가 담요로 다시 감싸 줍니다.
엄마는 은애를 방에 뉘었습니다. 할머니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보일러 온도를 조금 높여 놨다."
할머니는 은애가 누운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봅니다. 아직도 차가운 은애의 발을 이불로 몇 번이나 토닥여 줍니다. 엄마도 할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님!"
"그래그래."
할머니와 엄마는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벌써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한 듯했습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가끔씩 은애를 데리고 잘 때도 있었습니다.
엄마 방에서만 놀던 은애는 할머니 방에서 놀기도 하였습니다.
졸업식 날 아침입니다.
"은주야, 엄마는 은애 때문에 힘들겠어."
"내가 졸업생 대표로 졸업장을 받는데……."
"바쁘지만 잠시 시간 내어서 아빠가 가도록 할게."
아빠가 타이르듯 말합니다. 학교로 향하는 은주는
'난 은애의 언니니까 참을 수 있어.'
라고 생각하지만 엄마가 못 온다고 생각하니 조금 울적해집니다.
강당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졸업식이 시작됐습니다. 졸업장 받을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6학년 5반 이은주!"
은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갑니다.
교장 선생님 앞에 나가 졸업장을 받고 뒤로 돌아 인사를 합니다. 단상에서 내려오는데 저만치에 할머니와 어머니, 은애의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도. 할머니와 엄마가 박수를 치자 은애도 덩달아 박수를 칩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져서 걸음이 빨리 떼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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